우유와 머그잔에 관한 짧은 담론 - 02화 -

 그가 의식을 차릴 무렵 가장 처음으로 느껴진 감각은 끔찍할 정도의 피에 대한 갈망이었다. 그가 평소에 강대한 마력으로 제어해두던 그 욕망은 그가 힘을 잃어버림에 따라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다. 전신이 덜덜 떨려왔다. 그가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추위가 다시금 그를 덮쳐왔다. 그의 둔감해진 후각에 믿을 수 없을정도로 감미로운 향이 맡아졌다. 그가 심연의 나락으로 던져진 이후 처음으로 느껴보는 충족감이 그 향에서 발산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향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온몸을 떨면서 뒤돌아 본 자리에는 형연할 수 없는 오오라를 띈 소년이 잠들어 있었다.

 금주의 위력은 과연 전설대로였다. 소년의 파리하던 안색은 약간 창백한 정도로 혈색이 좋아졌으며, 극도로 불안정하던 호흡은 고르게 변하여 있었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고통에 신음하던 소년은 세상에서 더없이 편안한듯 잠을 청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는 소년의 침대를 향해 야수처럼 덤벼들었다. 끔찍하게 솟아나는 욕망은 오직 그에게 피를 탐하도록 만들려고 했다. 그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악!"

 갑작스런 끔찍한 비명과 함께 그는 방안을 나뒹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고통을 안겨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부서진 지붕의 사이로 새어나오는 빛, 그것은 태양이었다. 그의 권능이 하늘을 찌르던 시절 태양빛 마저 그의 어둠을 넘볼 수 없는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마력이 고갈된 지금은 한없이 하찮았던 태양빛마저 공포스런 존재로 변해 있었다. 그는 이를 갈며 저주했다. 자신이 했던 멍청한 선택과 변덕을, 그리고 신을 향해 끊임없는 저주를 퍼부었다. 그는 결국 침대에 접근하지 못하고 방 한구석에서 조용히 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밤이 깊어감에 따라 조금씩 화상에 의한 고통이 그의 이성을 일깨우기 시작했다. 커다란 통증이 그에게 잠시나마 사고할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그는 처참할정도의 자괴감을 느껴야만 했다. 소년의 목을 물어뜯는것은 간단했지만 그것은 그가 행한 금주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임을 그는 간신히 깨달을 수 있었다. 빛이 점점 사그라들면서 어둠을 불러오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욕망을 잠시나마 막아주었던 족쇄가 사라짐을 의미했다.

 그의 어둠의 심장이 요동치면서 그에게 피를 갈구했다. 그는 필사적으로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방법은 단 하나였다. 일단 급하게나마 갈증을 해소하는 것이 그가 행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초조함은 칼날처럼 그의 마음을 난자하였다. 빛이 조금씩 사그라드는 것을 보면서 그는 조금씩 자신의 내면에 조용히 숨죽이고 있던 야수를 느꼈다. 흉포한 괴물이 철창속에서 그를 유혹하였다. 이윽고 모든 빛이 어둠속에 침식되었다.

 그는 그에게 남겨진 마지막 의지를 쥐어짜내 문쪽으로 몸을 돌렸다.부서질듯이 문을 박차고 나가자 비록 어젯밤만큼은 아니지만 황홀할정도의 달빛이 그를 비추고 있었다. 이렇게나 유혹적인 달빛을 그는 일찌기 본적이 없었다. 아마 보았다 하더라도 그가 가진 힘에 도취되어 제대로 달빛을 응시하지 못했으리라. 그는 그가 지금 해야할 일을 보다 명확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누구인지도.

 그는 한시도 쉬지 않고 산속으로 맹렬히 달려갔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어둠에 속한 피조물인 그는 확실히 달빛의 마력에 강한 영향을 받아 아무런 피로를 느끼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정도의 힘으로는 아직까지 직접 인간을 습격하기엔 많은 무리가 따른다. 마치 하나의 생물처럼 움직이는 저 인간만의 사회권은 아주 사소한 이상이라도 감지하여 그 원인을 찾아내고야 만다. 그는 일단 비교적 안전한 산속의 생물들부터 포식하기 시작했다. 그는 아주 머나먼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러한 짐승들을 잡는 방법을 기억해 냈다. 처음에는 너무 오래된 탓에 생각처럼 쉽게 그의 손에 걸려드는 동물은 없었지만, 그것도 아주 잠깐동안 뿐이었다. 연달아 그의 손에 걸려드는 작은 짐승들은 구슬픈 비명만을 내지른채 피를 빨려 바닥에 나뒹굴었고, 그는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조그만 충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얼마나 많은 피를 빨았는지 잘 모를 정도의 시간이 되서야 그는 사정을 인지할 수 있을 정도로 의식이 돌아왔다.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평소에 주름하나도 허락하지 않던 그의 단정한 복장들은 전부 동물들의 털과 피로 얼룩져 있었으며 망토는 찢어져 나뭇가지나 잎사귀등을 온통 등에 지고 있었다. 한숨을 쉬었지만 당분간은 그의 성으로 돌아가기 힘들터였다. 일단은 다음 보름달을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동안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서 피를 보충한다면 성으로 돌아가는 것도 무리만은 아닐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소년도 거주지를 옮기게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그의 발걸음을 조금은 가볍게 만들었다.

by 무명 | 2008/07/01 04:29 | 자작단편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evil382.egloos.com/tb/1830928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