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6월 04일
문학과 사상 과제 : 슈렉 -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안티 메르헨 -
현대인들에게 있어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란 어떻게 비춰지고 있을까? 예전과는 다르게 수많은 이미지 정보들이 지구촌 구석구석을 넘나들게 된 지금 획일화된 미의 기준이 수많은 매스 미디어를 통해 양산되면서 루키즘이라는 문제를 야기시켰다. 이상적인 연애란 선남선녀에게만 있을 법한 보통 사람과는 관계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사회를 살아가는데 있어서도 외모가 차지는 비중이 절대적이라는 종교에 가까운 믿음들은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외모 컴플렉스라는 정신적인 부분부터 사회가 요구하는 미적인 부분을 만족시키기 위해 행하는 시술이나 식이요법등이 실제로는 사람들의 건강까지 해치는 등, 매스미디어가 만들어낸 기준에 사람들은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고 말았다. 미를 가진 자가 모든 것을 얻는다는 철학은 마치 서브리미널(subliminal : 잠재의식) 효과처럼 사람들의 정신을 깊숙히 파고들었다.
현재의 잘못된 체제에 대한 저항이나 있을 법한 이야기를 꼬집은 것이 리얼리즘이라면 슈렉의 표현방식은 희화화된 인물들을 이용한 풍자적인 내용으로 비록 낭만주의에 가깝지만 그 현실에 대한 깊이 있는 내용은 리얼리즘이라 할 수 있다.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하나하나 분석해보자.
슈렉은 태어날때부터 정해진 외모로 인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심한 편견을 안고 살아가는 오우거(Ogre)괴물이다. 그는 선남선녀로 구성된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동화에 심한 반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으며 비록 다른 사람들의 편견으로 인해 외롭게 살아갈지언정 자신이 살아가는데 불편함이 없는 늪지에서 나름대로의 생활을 영위한다.
그의 평화가 깨어지는 순간은 그가 가진 문제가 불거진 것 때문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이상이나 꿈을 간직한 동화들이 세상으로부터 배척당했기 때문이다. 극히 현실적인 문제들에 직면해서 쉽게 꿈이나 이상을 포기하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피노키오가 단돈 몇푼에 팔리고, 요정들이, 눈먼 말하는 쥐들이 한때는 우리가 꿈으로서 가지고 있던 것을 생활고에 시달릴법한 서민들에 의해 단돈 몇푼에 팔아넘겨지는 것들이 이제는 지극히 당연한 ‘현실적이며 어른스러운’ 대응으로 일컬어지게 되었다.
분명 메르헨의 세상에서 현실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것도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어떠한가. 희망이 없는 삶은 너무나 삭막하다. 꿈이 없는 삶은 너무나 건조하다. 이 쫓겨난 동화속의 존재들이 슈렉의 늪지로 오게되고 그동안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가던 슈렉의 늪지를 갑작스럽게 동화속의 세계로 바꿔놔 버린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강요당한 꿈과 이상이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늪지에 어울릴리가 없다.
자신의 아늑한 현실에 다른 존재들의 개입을 거부한 슈렉은 이러한 존재들을 쫓아낸 현실속의 권위자인 파쿼드 군주를 찾아가게 된다. 하지만 우습게도 이 파쿼드 군주야말로 이 애니메이션 속에서 가장 큰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키가 큰 남자가 위엄있는 남자라는 관념에 젖어있는 이 귀여운(?)군주는 작은 키 만큼이나 속좁은 인간으로 묘사된다. 일단 그의 콤플렉스가 가장 크게 드러나는 부분은 그가 살고있는 성에서부터 여실히 드러난다. 비정상적으로 높이를 중시한 그 성은 그가 가지고 있는 ‘높이’에 대한 컴플렉스를 드러내준다. 게다가 그 키 만큼이나 소심한 그의 성격은 응당 그가 행해야할 공주를 구출하는 역할을 다른 기사에게 떠 넘겨버리게 만든다. 로맨스는 이미 그의 관심사가 아니다. 여성의 마음을 얻기위해 해야할 최소한의 위험조차 그는 감수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실상 늪지로 다른 동화속의 인물을 쫓아버린 것도 그가 선택해야할 공주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마법의 거울을 찾기 위한 지극히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물론 파쿼드 군주는 피해자의 입장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외모 지상주의라는 악습은 슈렉처럼 철저한 고립을 불러올 수도 있지만 반대급부로는 다른 능력에 대한 욕심을 부채질하기도 한다. 이러한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는 그에게 동화속의 꿈을 늪지로 쫓아버리게 했으며 공주와 결혼하여 왕의 권력을 갖겠다는 매우 현실적인 생각에 빠지게 하는 계기가 된다. 그는 꿈을 매우 하찮은 것으로 여기며 그것이 그의 외모를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방편으로 여기게 된다. 과자인간을 고문하여 아무렇지도 않게 버린다던가, 마법의 거울을 위협하여 공주를 보여주게 만드는 등의 행동에도 그가 가진 현실적인 면이 잘 드러난다.
하지만 이러한 파쿼드 군주의 소심한 성격덕분에 슈렉은 공주를 구하는 여행을 떠나는 계기를 얻게 된다. 대행기사의 자격으로 슈렉은 공주를 구하는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슈렉은 여기서도 많은 것을 바라진 않는데, 그것은 그저 다시금 이전의 늪지로 돌아가게 해 달라는 나를 무미건조한 현실속으로 돌려보내 달라는 조건이었다. 그가 남을 위해서 하는 일들도 실은 자신의 생활을 방해받지 않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 여행을 떠나는 초반에 여기서 이 애니메이션에서 이야기 하고자 하는 핵심적인 내용이 등장하게 된다. 슈렉의 동반자인 동키는 말 그대로 볼품없는 당나귀지만 이 이야기 내에서 가장 콤플렉스에 연연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다른 존재에게 마음을 열 줄 아는 존재이다. 어찌보면 가장 힘없고 볼품없으며, 머리도 나쁜 존재인 동키는 이 이야기의 주재내에서 가장 강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런 동키가 슈렉에게 물어본다. 왜 혼자 살려고 하는지, 왜 남과 소통하며 살려고 하지 않는지를 말이다. 슈렉은 자신을 양파에 비교한다. 자신에게는 수많은 면을 지니고 있다고 벗기면 벗길수록 새로운 면이 드러나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겉모습만을 보고 피하기 때문에 자신이 미리 피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슈렉도 모순에 빠져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서 편견을 갖고 있을 거라는 편견을 자신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남의 접근을 막는 것은 자신을 고스란히 차단하는 결과만을 낳게 되었다.
용의 성 또한 용이 가지고 있는 상처를 그대로 형상화 한 모습이다. 실상은 외롭고 사랑할 누군가를 원하는 암컷 용이지만 자신이 갖고 있는 외형적인 요소들이 쉽사리 그녀의 마음을 열지 못하고 결국 자신의 마음을 대변하는 성을 괴기스럽고 여기저기 부서진 형태로 남아있게 하였다. 이런성에는 공주가 가둬져있다. 자신이 갖지 못한 모든걸 갖고 있는 공주에게 어쩌면 용은 질투를 느낀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승자박이라는 형태로 슈렉과 동키에 의해 고립된 용은 피오나 공주를 놓치고 만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슈렉일행은 공주를 구한다. 한순간이나마 비록 진심어린 말은 아니었지만 동키가 해주었던 외모에 대한 칭찬에 기뻐하던 이 암컷 용은 자신의 고립을 슬퍼한다..
슈렉과 피오나 공주의 첫 만남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 동화속의 세계에 빠져있는 공주가 현실을 깨닫게 되는건 그리 오랜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처음 슈렉을 본 공주의 마음, 그리고 그 공주의 반응을 본 슈렉은 쉽사리 실망감을 표출하고 서로의 그런 모습에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여행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은 서로를 알아가기에 충분할 정도로 길었다. 서로는 서로의 장점을 보면서 자신이 지니고 있던 편견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알게 된다. 슈렉이 갖고 있던 편견은 눈녹듯 사라지고 외모가 아름다운 사람도 남을 위한 배려, 그리고 강한 자기주장을 갖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며, 피오나 공주는 슈렉의 외모 밑에 감춰진 자상함과 세심함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는 마치 다수가 다 잘난 것처럼 행동하는 로빈 훗의 조롱을 강하게 반박할 정도의 주장을 피오나 공주는 갖게 된다. 수동적이고 의존적으로 행동알줄 알았던 공주가 적극적으로 자신을 표출하는 것을 본 슈렉은 이러한 모습에 끌리게 된다.
여행이라고 표현되는 이 기나긴 연애의 초반이 지나면서 하나 둘 파장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실은 한 밤중에는 괴물이 되는 저주를 갖고 있었던 피오나 공주는 자신의 단점이 슈렉에게 알려지길 원하지 않으며 이러한 단점이 슈렉으로 하여금 자신을 싫어하게 되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비록 슈렉 또한 그런 외모를 갖고 있다 해도 자신을 좋아하게 된 요인이 외모일거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 슈렉이 고백을 포기하게 되는 계기는 더 측은하다. 피오나 공주가 자신에게 이야기한 ‘이런 괴물을 누가 좋아하겠어’라는 발언은 슈렉으로 하여금 가까스로 생겨난 용기를 한순간에 없에버리기에 충분했다. 서로의 단점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연애가 가져온 환상에서 벗어나 조금은 더 냉정하게 상황을 바라보게 된다.
결국 다시 생겨난 편견은 서로의 사이를 갈라놓고 피오나 공주와 슈렉은 서로 현실적인 선택을 이루었다고 자위하며 쓸쓸하게 자신이 있을 곳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런 편견은 자신의 마음속에서만 생겨난 것일 뿐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기 때문에 마음이 편할리 없다. 슈렉은 자신을 더욱 늪지에 고립시킴으로서 자신을 찾아나가려 했으며, 피오나 공주는 더욱 자신을 동화속의 주인공으로 만들면서 위안을 삼으려 한다.
마침내 슈렉의 늪지에 끈질기게 버텨준 친구인 동키에 의해 오해가 풀리게 되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은 슈렉은 마침내 피오나 공주의 결혼식장에 뛰어든다. 모든 편견과 오해는 사라지고 오직 진실만이 남게 된다. 가장 동화 같은 형식을 빌려 가장 현실적인 결말이 드러난다. 피오나 공주는 원래 오우거였다. 그리고 진실한 사랑이 그녀로 하여금 ‘진실된’ 단점으로 가득한 모습을 드러나게 한다. 하지만 슈렉은 이러한 모습에 전혀 괘념치 않으며 마침내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게 된다. 슈렉에서 이야기 하는 ‘진실된 사랑’이란 서로의 아름다운 면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가장 치명적인 단점까지 안아주는 순간에 완성되었다. 동키와 용이 맺어지게 되는 경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동키가 슈렉에게 버림받고 암컷 용은 동키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해서 입은 상처를 서로 공유하면서 형성된 공감대가 이들의 사랑을 이룬 동기가 된다.
디즈니에는 이런 유사한 플롯의 애니메이션이 많이 있다. 한결같이 미인으로 묘사되는 여주인공과 미남으로 그려지는 주인공의 영원한 사랑은 그 아름다움만큼이나 사람들로 하여금 낭만속에 빠져들게 한다. 하지만 슈렉은 비록 매스미디어가 요구하는 미의 기준에 부합하는 모습은 없다 하더라도 조금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전달해준다.
리얼리즘은 단순한 현실의 모사와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사회가 지니고 있는 한 단면을 현실보다 더욱 그럴듯하게 극적인 재현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슈렉이 지니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가 큰 위력을 발휘한다. 모든 사람들은 여러가지 계기를 통해 상처를 입고 수많은 콤플렉스를 안고 살아간다. 비록 여러가지 모습으로 희화화 되었을지언정 그것은 모두 인간의 한 단면을 모티브로 한다. 매스미디어라는 권력에 짓눌려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러할 것이며, 그것을 다른 사회적 권력을 이용해서 복수하려는 사람들도 틀림없이 존재할 것이다. 또한 동화속에 빠져 현실을 깨닫기 전까지 백마탄 왕자가 자신을 구하러 와서 시를 읊어주길 바라는 여자들도 분명 존재한다. 슈렉은 이러한 현실을 극명하게 대변하는 캐릭터들로 하여금 상처입은 사람들과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어떻게 소통하고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함으로 인해서 가질 수 있는 것들을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장단점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소하는가를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통해 풍자적으로 풀어놓는다.
문학과 예술에 대한 교육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삭막한 나라에서 미디어가 내보내는 가식으로 가득찬 동화같은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은 어쩌면 어쩔 수 없는 필요연적인 결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동화속의 이야기는 사람과 사람끼리 소통하는 방법을 먼저 알려주기 보다는, 상대에게 잣대를 들이대고 평가하는 방법부터 알려주며 자신의 단점을 감추는 방법부터 알려주게 된다. 그렇다 동화속에는 현실이 없다. 모든 것들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만은 없지만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그렇지 않은 현실에 심한 괴리감을 느끼게 되고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인해 자신도 조류를 따라가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갑작스레 우리나라에 불어닥친 얼짱, 몸짱 열풍도 이러한 겉모습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세태를 잘 반영해준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다르고 모두가 원하는 획일화된 미의 기준을 만족시켜줄 수 있을리 없다. 모두가 조금만 편견을 걷어내고 내가 갖고 있는, 그리고 상대방이 갖고 있는 장점과 단점을 직시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슈렉은 현대사회에 등장한 새로운 기득권층에 대한 강한 저항정신을 갖고 있다. 자본이란 것도 하나의 권력에 해당하겠지만 새로운 권력의 요소로 등장한 것은 다름 아닌 ‘미’라는 가치관이다. 물론 예전에도 이러한 요소가 전혀 낯선 것은 아니지만 미디어를 통한 우상화가 손쉬워진 지금에는 훨씬 여러가지 콘테스트를 통해서 훨씬 더 권력으로의 등용문이 넓어진 상황이다. 덕분에 누구나 미를 추구하며, 미가 갖고있는 상업적인 가치를 높게 평가할 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인간은 배반당할 것이다. 신에게 그러했듯, 이성에 그러했듯, 사회에 그러했듯 인간이 추구하던 절대적인 요소들은 항상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해 배신당해 왔다. 슈렉은 작금의 현실에 새로운 충격을 던져주면서 리얼리즘이 갖춰야 할 가장 강렬한 요소인 현실에 대한 목적의식을 유감없이 잘 보여주고 있다. 언젠가 인간이 진심이나 진리로부터도 배신당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슈렉을 통해서 한번쯤 외곡된 미 의식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 by | 2008/06/04 15:17 | 나의 일상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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