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5월 08일
고해성사
세상이 하얀 눈에 뒤덮여 점점 어둠과 고요속으로 침식하고 있었다. 한때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재촉하던 거리도 이젠 완전히 인적이 끊겨 가로등만이 골목길을 쓸쓸히 비추고 있었고, 주위에 펼쳐진 네온사인들 또한 흩내리는 하얀 눈에 가린채 간헐적인 깜빡임으로 적막감을 더할 뿐이었다. 낮동안 활기에 가득 차 있던 이 거리는, 그 열기를 머금은 채 점점 얼어붙고 있었다.
아마 이런 시간에 돌아다닐 수 있는 존재는 대낮의 활기를 거부한 존재이거나, 아니면 피치못할 사정으로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일 것이다. 거리의 골목길에 드리워진 그림자에서 한 인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꽤나 신중하지만 망설임 없는 발걸음은 잘 보이지 않는 거리의 구석쪽에 위치한 문까지 이어졌고 그 인영은 한참을 움직이지 않은채 그 앞에 머물러 있었다. 'Bloody Mary'라고 쓰여진 네온사인만이 붉은 빛을 내며 골목을 비추었다.
이윽고 한 두 사람씩 주점 안에서 나오기 시작했고, 다섯명 남짓 나왔을 때쯤 네온사인의 불이 꺼졌다. 그리고 마지막 손님이 골목으로 사라졌고, 그때서야 그 인영은 조용히 바의 문을 열었다. 안에서는 초로의 남성이 한창 정리중에 있었고, 아직까지 누군가가 실내에 들어왔다는 사실은 모르는 듯 했다. 순간 안으로 들어온 사람이 입을 열었다.
"실례합니다."
그때서야 정리중에 있던 초로의 남성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 목소리는 예상외로 젊은 남성의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상당한 교육을 받은 듯 차분하며 절도 있는 말투를 구사했다. 주점의 주인은 고개를 끄떡이더니 안으로 들어오라는 듯한 시늉을 했다.
일단 주점의 안으로 안내를 받은 젊은 사내는 후드를 뒤집어 쓴채 주인의 안내에 따라 식당으로 들어갔다. 꽤 넓은 홀이었지만 아무도 없었기에 실내에는 두명의 발소리만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식당으로 들어가자 주인은 일단 젊은이에게 앉을 자리를 내주고는 곧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주방안으로 들어갔다.
곧 식당안은 어둠으로 가득찼고, 이내 고요해졌다. 어둠속에서 젊은이는 후드를 벗었고 미동도 하지 않은 채로 그저 조용히 기다릴 뿐이었다. 잠시 후 주점의 주인이 다시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알 수 없는 차와 약이 올려진 쟁반이 들려져 있었고, 다른 한손엔 여전히 램프를 들고 있었다. 주인은 돌아와서야 비로소 젊은이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리 수려하진 않았지만 고급스러우며 단정한 외모에 약간 고집스런 듯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주인은 잠시동안 그를 들여다 보더니 문득 말을 꺼냈다.
"여긴 처음이오?"
젊은이는 정신을 차린듯, 다시 후드를 뒤집어 쓰고는 대답했다.
"전 단지 확인해보고 싶은게 있어서 왔을 뿐입니다."
주인은 주름진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대답했다.
"걱정 마시오, 생각보다 이곳을 찾는 자는 많다오."
젊은이는 아무말도 없이 탁자를 주시할 뿐이었다.
젊은이가 아무말도 없는 것을 본 주인은 한차례 한숨을 쉬더니, 말없이 들고 온 차와 약을 식탁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주의사항을 일러주기 시작했다.
"일단 이 차는 여러모로 도움이 될테니 마셔두시오. 그리고 이 약이 중요한데, 이 약이 있어야 그들의 독소에 오염되지 않을 수 있다오. 의식이 시작되기 전에 반드시 섭취하시오. 이미 오염된 후에는 늦어버리니, 반드시 잊지 말기를 바라오."
젊은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떡이며, 조용히 차를 마셨다. 주인은 옆에 있는 의자에서 잠시 앉아있더니, 젊은이가 차를 다 마시는 것을 보자. 그를 데리고 지하실로 향했다.
지하실은 커다란 이런저런 물건들이 쌓여있었고, 창고치고는 이상할 정도로 정돈되어있었다. 생각보다 지저분하지 않았고, 거미줄이나 먼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주인은 한 짐들이 조금 덜 쌓여있는 구석으로 젊은이를 데리고 가더니 조심스래 구석의 벽을 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돌이 긁히는 소리가 들리면서 나무로 된 벽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젊은이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서있자 주인은 젊은이의 등을 떠밀며 돌로 된 긴 통로로 들어갔다.
'쿵'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젊은이는 이 통로안에서 느껴지는 요사스런 요기에 전신의 털이 바짝 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뭔가 현실과는 다른 이질적인 느낌에 젊은이는 필사적으로 저항하면서 말없이 주인장의 뒤를 따라 깊은 어둠속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렇게 한동안을 가던 중 주인장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자유요. 원하는 것이라도 있으면 미리 말해주시구려."
젊은이는 긴장되서인지 아무말도 없이 그저 고개를 끄떡일 뿐이었다.
잠시 후 통로의 끝에는 커다란 철문이 여러개가 나열되어있었고, 알 수 없는 기괴한 흐느낌이 사방에 조그맣지만 또렷하게 울려펴지고 있었다. 젊은이는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급히 주인을 향해 말했다.
"저 가장 최근에 들어온 존재와 의식을 치루고 싶습니다."
젊은이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주인을 응시하며 말했다. 주인은 잠시 가만히 생각하는듯 하더니 이내 떠오른듯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띄며 말했다.
"그런가, 신부님께서는 그런 취향이셨던가. 그럼 일단 저쪽 끝에 있는 방으로 가시지요."
젊은이는 신부님이란 말에 움찔했지만, 이내 주인을 따라 통로 끝에 있는 커다란 철문앞에 도착했다. 주인은 허리춤에서 열쇠 꾸러미를 꺼내더니 눈앞에 있는 거대한 철문을 열고 안으로 불빛을 비추었다.
문이 열리자 방금전까지만 해도 은은하게 느껴지던 요기가 격렬하게 부딪혀 왔다. 젊은이는 아까의 차 덕분인지 극도로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공포심에 아무런 말도 못하고 그저 그 자리에 서서 식은땀만 흘리고 있었다.
주인은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젊은이를 힘껏 안으로 떠밀며, 말했다.
"그럼 의식이 끝나면 데리러 오겠소. 젊은이."
그리고는 당황하는 젊은이와 램프를 남긴채 문을 잠그고는 어둠속으로 사라져갔다. 그리고 그가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아. 소름끼치는 흐느낌이 바로 옆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통곡인지 원망인지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젊은이의 의식을 취한듯 흐리게 했지만, 아까 마신 차 덕분인지 그리 쉽게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젊은이는 램프를 들고 방안의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조심스래 비추었다.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 공허한 눈동자가 젊은이를 응시하고 있었다. 눈처럼 흰 창백한 피부는 쇠사슬에 결박된채 미동도 하지 않았고, 그저 창백한 입술 끝에 삐져나온 송곳니만이 램프 빛을 받아 번들거리고 있었다.
젊은이는 전신을 부들부들 떨며, 램프를 구석에 놓고 필사적으로 그 빨려들 듯한 눈빛에 저항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조심스래 입을 열었다.
"당신은, 저를 알고 있지요?"
방안을 뒤덮던 긴장감이 한순간 조금이나마 완화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마물은 조용히 고개를 끄떡이고는 나즈막하지만 매혹적인 음성으로 젊은이를 향해 대답했다.
"왜, 이곳까지 오신겁니까."
목소리를 듣는 순간 젊은이는 한층 더 가슴이 두근대는 것을 느꼈지만, 무의식적으로 그녀에게 다가가는 것만은 억제할 수 있었다. 아까 마신 차가 최대한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해준 탓이었다. 젊은이는 들려오는 목소리에 심호흡으로 마음을 다잡고 다시금 말을 이었다.
"저는 당신에게 확인할게 있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고개를 돌리며, 그녀는 요기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서 의식을 행하고 돌아가 주십시오. 저는 더이상 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젊은이는 긴장이 조금 풀린 덕분인지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말했다.
"기다려 주세요. 저는 아직 할 이야기가..."
다시한번 격렬한 요기가 방안을 뒤덮었고, 눈이 붉어진 그녀가 젊은이를 쏘아보며 소리쳤다.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전 당신 덕분에 모든것을 잃었습니다! 당신의 신이 아직 당신을 붙들고 있을때 돌아가세요! 당신이 한번 그의 곁을 떠나버리면 아무리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져도 절대로 그는 당신을 돌아보지 않을겁니다!"
젊은이는 그 기세에 밀려 뒤로 넘어졌다. 그리고는 다시 일어나 고개를 숙이고 한동안을 그렇게 서 있었다. 그리고 조금 진정이 되자 그는 다시금 그녀를 향해 조용히 말했다.
"전, 저의 책무에 충실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그를 바라보며, 연민에 가득찬 어조로 대답했다.
"전 일련의 사건을 누구의 탓으로 돌리고자 하는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제가 어리석어 이런 결과를 빚어낸 것일 뿐. 당신이 진심이었다는 사실이 저를 더욱 가슴아프게 하는군요. 야속한 분...그리고 가여운 분..."
순간 그녀의 눈이 공허한 어둠을 토해내였다. 꾸역꾸역 모여드는 어둠은 젊은이를 삼킬듯이 다가왔고, 젊은이는 심장이 터질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다.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자꾸만 생각이 끊어지면서 시야가 흐릿해졌다. 깜빡거렸다. 착각이었을까? 그녀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아니, 그가 가고있는 건지도 몰랐다. 그녀의 눈망울이 눈에 들어왔던듯도 하다. 깊고, 고요하며, 너무나 청명한 그런 눈이었다. 곧 살점이 찢어지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렸다.
죽음에 이를것만 같은 한기가 전신을 엄습했다. 하지만 곧 온몸이 녹아날듯한 온기가 긴장을 앗아가 버렸다. 갑작스레 목이 타오르고 혀가 갈라질 것만 같은 갈증이 폭풍처럼 일어났다. 하지만 이내 더할나위 없는 상쾌함이 전신을 적시는 것만 같았다. 혀가 마비될듯한 씁쓸함이 격렬한 고통이었다면, 이내 달콤한 미각은 이성을 마비시킬것 처럼 강렬하게 다가왔다. 온 몸의 구석구석 전신에 존재하는 모든 감각이 극한의 불쾌함과 고통을 쏟아내었고, 곧이어 그 불쾌함은 지고의 쾌락으로 젊은이에게 보답해 주었다. 이 모든 것이 그녀의 송곳니가 젊은이의 목을 궤뚫자 생겨난 일이었다.
젊은이는 고통속에 몸부림쳤으며, 쾌락속에 녹아내렸다. 한순간도 정신을 차릴 수 없이 끝도 없는 감각의 유희를 맛보았다. 모든것은 덧없고 허무한것이 되었으며 전신의 감각에 호소하는 쾌감만이 진실이었다.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오가는 와중에 젊은이는 전신의 모공에서는 식은땀을 쏟아내었고, 그런 가운데에서도 그녀는 차분하고 절도있는 손길로 그를 안고 조용히 피를 빨았다.
마치 아이를 어르는 어머니같았다. 공포에, 또는 죄책감에 못이겨워하는 아이를 안고 달래주는 어머니처럼 그녀는 차분하게 그의 몸에서 피를 뽑아내면서 그녀만이 줄 수 있는 쾌락을 그에게 제공해주었다. 그것은 절대적인 육욕이었으며, 그 무엇보다도 커다란 금기를 범하는 일이었다. 이런 몸을 가지게 된 이래로 처음 느껴보는 안도감이 한 순간도 멈추지 않는 그녀의 불같은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해주었다. 잠시, 아주 잠시나마 그녀는 예전의 몸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 순간이었다.
그녀의 눈에 젊은이의 오른손에 쥐어졌다가 발작적인 움직임 때문에 떨어진 알약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그녀를 애워싸던 꿈은 산산조각이 나버렸으며, 더없는 절망감이 그녀를 다시금 엄습했다. 그녀는 황급히 그에게서 흡혈을 멈추고 그를 반듯하게 뉘었다. 이전에도 한번 그랬던 것처럼 그녀는 나즈막하게 신을 저주하는 말을 읊조리며 그가 눈을 뜨기만을 기다렸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두손을 모았다. 이제서야 그가 그녀를 찾을 이유를 알것만 같았다. 그녀 스스로의 어리석음에 가슴이 아려왔다. 그녀의 눈에서 붉은 눈물이 조금씩 흘러내렸다. 그리고는 하염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눈을 뜰 무렵, 세상은 보다 명확해져 있었다. 빛이, 소리가, 냄새가, 이전과는 다른 감각으로 그를 애워싸고 있었다. 그가 가져왔던 램프는 태양처럼 빛나고 있었으며, 방안은 대낮처럼 환했다. 비록 흐느끼는 듯한 소리는 더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지만, 방안의 구석구석에서 기어다니고 있는 벌레와, 램프가 타오르는 소리, 그리고 물방울이 땅에 떨어지는 듯한 소리는 더욱 명확하게 들렸다. 무엇보다 가장 크게 변화한 것은, 거짓말처럼 공포심이 사라졌다는데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런 감정은 없었다는 듯이, 심지어는 태어난 이래 한번도 그런 감정을 느껴본적이 없다는 듯이 공포라는 감정을 제거당했다. 불과 조금전까지 방안에서 느꼈던 감정은 어느덧 희열로 서서히 바뀌어 갔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그는 그제서야 물방울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의 정체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를 응시하고 있던 두눈은 아직도 조용히 붉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낙루는 끊임없이 땅을 적셨다.
"어째서, 이리도 잔인하게 저를 유린하십니까. 이 무슨 짓궂은 장난입니까."
비통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목소리로 그녀는 흐느꼈다.
"내가 한 일에 부디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해주시오."
여전히 차분하며 절도있는 말투였지만, 전과는 다르게 칼날같은 날카로움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그의 변화를 눈치챘으며 가슴 한켠이 미어지는 것을 느꼈다.
"책임이란 자신의 감당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행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신의 섭리를 벗어난 행동을 인간인 당신이 감당할 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당치도 않습니다. 그것은 오만일 뿐입니다."
그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서렸다. 알 수 없는 힘이 그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었다.
"당신도 알다시피 저는 이제 인간이 아니지요. 마치 당신처럼."
그녀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그녀는 고개를 떨군채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조용히 그의 손이 그녀의 손에 포개졌고, 그녀의 손에는 조그만 알약 하나가 놓여졌다.
"당신이 기다린 것은 제가 아니라 이것 아닙니까?"
순간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더없이 애처로운 표정도, 그의 심경에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했다. 이것은 아까 그의 손에 쥐어져있던 뱀파이어 베인(Vampire bane)이라는 이름의 알약이었다. 이 약에는 두가지 효능에 대해 언급되고 있다. 하나는 보통사람이 섭취할 경우 뱀파이어의 독소에 면역력을 갖게 되는 것이었고, 두번째는 이미 독소에 오염된 사람이 섭취할 경우 독소와 함께 완전히 파괴되는 것이 그 효능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알약을 응시하다가 결심했다는 듯이 주먹을 꼭 쥐었다.
"마지막으로 할말이 있습니다."
그는 여유로 가득찬 미소마저 지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은 맑게 빛나고 있었고, 그 눈은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잔잔하였다. 그는 그 눈을 보며 약간의 두려움조차 느꼈다. 이내 그녀가 망설임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부디 당신의 가여운 영혼이, 후회속에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그녀는 알약을 입속에 넣고 순식간에 삼켜버렸다. 그 순간 그녀는 보았다. 신부선언식때 가장 긴장하던 한 젊은이를,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진심으로 눈물을 흘리던 그를 보았으며, 처음으로 그에게 가져선 안되는 감정을 느꼈을때의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교주에 의해 이곳까지 팔려오던 그날의 눈길이 망막에 새겨졌다. 그녀는 순간 모든것을 안도했다. 그토록 그녀를 괴롭히던 갈증과 함께 온몸의 감각이 조금씩 사라져감을 느꼈지만, 너무도 소중했던 옛 기억에 그녀는 행복했다. 그녀가 있던 자리에는 오직 회색빛 재만이 소복히 쌓였다.
젊은이는 조용히 그 재를 응시했다. 한참을 응시하던 그는 곧 이 가게의 주인이 올것을 상기하며 아무도 모르게 가게를 나갈 것을 결심했고, 그대로 하였다. 바깥은 여전히 고요와 어둠을 지키고 있었지만, 그에게는 모든것이 변하였다. 인간이었을때는 아마 슬픔이라고 불렀을 불쾌감이 얼핏 지나갔지만, 그는 이제 크게 괘념치 않을 수 있었다. 그저 씁쓸한 미소만이 그녀에게 보내는 추모의 전부였다. 그녀가 감싸안아주던 그를 이제는 어둠이 받아들여주었다. 칠흙같은 어둠속으로 그는 스며들듯 사라졌다.
- 고해성사 : 끝 -
# by | 2008/05/08 00:46 | 자작단편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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